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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Inside Red Heart
구의 심장 속으로

숭고한 자연물 앞에선 여행자는 땅 속 깊이 잠든

수억 년 역사의 단면을 경이롭게 바라본다.

메마른 대지 위에 외로이 솟은

거대한 바윗덩어리는 오랫동안 여행자의 호기심과

욕망 속에 있던 울루루다.

Published by Lonely Planet Magazin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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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삭바삭한 햇볕이 메마른 사막에 사정없이 내리쬔다. 에어스록공항(Ayers Rock Airport)에서 막 빠져나온 사람들은 분주한 픽업차량 옆에 서서 볕을 수혈받듯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지구 반대편에서 30시간 넘게 비행기를 갈아타고 왔다는 주름이 깊게 파인 노신사, 시드니에서 백팩 1개만 덜렁 메고 온 배낭 여행객 모두 같은 자세다. 그들은 신성한 땅을 밟았을 때. 치르는 통과의례처럼 사막의 텁텁한 공기와 볕을 몸에 각인시킨다. 잿빛 풀이 제멋대로 자란 대지와 맞닿은 지평선, 은혜처럼 내리쬐는 볕, 구름으로 수채화를 그린 하늘은 둘레 9.4킬로미터, 높이 348미터의 거대한 바위를 빛내는 조연처럼 호주 아웃백을 장식한다. 붉은 모래 평원에 형성된 웅장한 암괴는 고생대이전, 6~9억 년 전쯤부터 고독하게 한 자리를 지켜왔다. 바닷 속 퇴적된 사암이 지각변동으로 융기해 거대한 산군을 이루기까지. 약한 살점이 바람에 떨어져나간 울퉁불퉁한 암석은 세상의 중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지하에는 보이지 않은 깊이 700미터 정도의 암반이 아직 잠들어 있다.

신이 빚어낸 붉은 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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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운동화는 붉게 물들게 될 거예요. 울루루에서 가져 오는 기념품이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호주관광청 담당 자는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한다. 태고의 대자연이 빚어 놓은 예술 작품의 잔해는 각별하다. 울루루는 사암의 철 분이 산소와 결합해 붉은빛을 낸다. 가파른 절벽과 정상의 완만한 평지가 거의 직각을 이루는 기암은 태양광의 움직 임에 따라 시시각각 극적인 얼굴을 내보인다. 황갈색에서 강렬한 주황빛, 그다음에는 깊고 진한 붉은빛으로. 한시도 지루할 틈 없이 변화무쌍한 모습에 여행자는 쉽사리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섭리가 이곳에서는 신의 선물처럼 매일 바위를 향해 쏟아지는 것이다.

태고의 신비를 품은 암괴는 인류 역사를 방증한다. 황량한 대지에 박힌 바위 곁을 5,000여 년 전부터 지켜온 원주민 아난구(Anangu)족은 울루루를 영물로 여겨왔다. 이는 문명에 한참 뒤진 시대 탓만은 아닐 것이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고결함이 느껴지는 바위의 웅장한 자태는 신의 솜씨가 아니라면 좀처럼 설명하기 힘들다. “울루루는 남자의 영역이에요. 지금도 일부 원주민은 바위를 지 키며 제를 올립니다.” 울루루 카타 추타 국립공원(Uluṟu- Kata Tjuṯa National Park) 가이드 제니(Jenny)가 붉은 암석 사이로 난 오솔길로 여행객을 통솔하며 이야기한다. 그녀의 말대로 문명과 타협을 거부한 일부 원주민은 오늘날까지 붉은 모래가 쌓인 사막을 맨발로 걸어 다니며 원시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울루루는 오랜 인류 사회가 지켜온전통 신앙의 유산이다. 깊게 파인 자리와 거칠게 깎인 굴곡, 침식으로 형성된 동굴에는 부족의 탄생 설화와 희귀 동·식물, 사냥을 뜻하는 벽화 등이 암호처럼 남아 있다. 바위에 난 생채기는 눈·코·입이 달린 사람 형상을 띠고, 제를 지내는신성한 곳에는 하얀색 동그라미를여러 번 그린 자국이 선명하다. 푸른 혀를 가진 도마뱀 사나이, 바위에 갇힌 조카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희생한 일가의 흔적, 원주민이 주요 의식을 치를 때 나타났다는 적갈색 토끼 왈라비 말라(Mala)의 발자국 등. 원주민 출신 가이드가 쏟아내는 이야기는 태고의 신비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포장한다. 아 난구족은 황톳빛 바위 틈을 타고 폭포처럼 흘러내린 빗줄기마저 메마른 땅을 적시는 신성한 물로 여겼다. 빗물이 고여 형성된 호수를 본 원주민은 바위의 은혜와 성스러 움에 또 한번 탄복했으리라. 오늘날 고고학자들은 지극히 황량하고 이질적인 울루루의 환상을 거둬내고 자연과 인류가 남겨놓은 태고의 신비를 기록한다. 19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울루루를 찾는 방문객은 연간 1,000명을 넘지 않았지만, 오늘날엔 열흘에 1,000 명 꼴로 이 신성한 바위를 보러 온다. 1983년 아난구족은 오랜 분쟁 끝에 국가로부터 울루루 소유권을 되찾았다. 지금은 국가에 일정 기간 대여하는 조건으로 공동 관리한다. 방문객의 입장을 공식 허가한 울루루 카타 추타 국립공원에는 울루루를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는 트레킹 코스를 마련했다. 극소수 등반객을 위해 울루루 정상에 박아놓은 쇠말뚝은 신성한 공간에 대한 합법적 침범을 알린다. “원주민 사이에서는 주술사를 제외하고 울루루에 오르는 것이 금기입니다. 당연히 방문객이 오르는 걸 좋아하는 원주민은 없죠. 그들은 아무도 다치지 않길 바라거든요.” 가이드 제니가 조심스럽게 당부한다. 호기심 가득한 여행객은 이를 무시하고 가파른 바위를 오르다 실족하거나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건조하고 무더운 사막 날씨에 목숨을 잃기 도한다. 간혹 울루루에 죽은 혼령이 깃들어 있다는 말이 주술적 의미만은 아닌 듯하다. 원주민은 등반 대신에 트레킹 코스를 따라 걷고, 한여름에는 오전 11시에 투어를 끝낼 것을 강권한다. 그리고 숨이 턱턱 막히는 사막을 걷는 동안 시간 당 1리터의 물을 마시는 건 필수다. 영적인 장소에는 입장을 제한하는 표지판이 걸려 있다. 이상 기후가 나타나는 날에는 방문객의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도 보인다. “원주민에게 함부로 카메 라를 들이대지 맙시다. 표지판이 걸린 곳은 사진 촬영하면 안돼요.”대형 버스가 쏟아 내고 간 오지 탐험대를 향해 또 다른 가이드가 큰 소리로 외친다. 트레킹 코스 출발 지점에서 관광객이 기억해야 할 문구는 딱 한가지다. “이곳은 우리의 집입니다. 초대한 당신을 안전하게 책임질 의무가 있니다. 울루루에 오르지 마세요. 제발.”

그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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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여 년 전부터 울루루에 인간이 쭉 거주해왔다는 사실 은 고고학 증거로 확인할 수 있다. 건조한 황무지에 뿌리 내린 그들은 바위틈에 생긴 동굴에서 거주하며, 도구를 만들고 사냥을 했다. 볕이 반쯤 드리운 바위에는 극명한 명암이 드리워지고, 바위틈을 파고든 바람은 인간의 안식 처를 제공한다. 호주 중앙 대륙에 거주해온 원주민 애버리 지니(Aborigine)는 이곳을 ‘그늘이 지난 자리(Uluru)’라 고 불렀다. 메마른 황무지에 삶의 뿌리를 내린 것은 인간 만이 아니다. 혹독한 자연 속에서 꽃과 열매를 맺는 식생 은 원시생활의 풍요를 가져왔다. 원주민은 사막에 흩뿌려 진 씨앗으로 식용할 수 있는 자연 먹거리와 약재를 고안 해냈다. 그리고 레드캥거루, 뱀의 왕으로 불리는 와남비 (Wanambi), 도깨비도마뱀(Thorny Devil), 희귀 맹금류 등 수백 종의 생명은 인간과 더불어 고독한 바위 곁을 지 키며 번식해나갔다. 원주민의 전통 음식을 기반으로 하는 부시 터커(Bush Tucker) 요리는 오늘날 토착 식물의 잎 이나 줄기로 만든 향신료, 잼, 디저트, 악어와 캥거루, 에뮤 고기로 만든 수프와 스테이크 등을 아우른다.

 

1872년 유럽 탐험가가 이 땅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울루루(당시는 에어스록이라고 불렀다)가 일반인에게개방되자 전 세계 오지 여행가는 수 천 킬로미터의 따분한 풍경을 견디며 호주 중앙 대륙으로 몰려왔다. 관광 붐으로 원주민의 강제 이주도 불가피하던 시절이었다. 오늘날 정부는 원주민의 생활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자연환 경과 원시 전통의 보존, 관광권과 상업적 이익 등이 맞물린 대치 상황에 골머리를 앓는다. 원주민을 보호하는 동시에 밀려드는 관광객을 받아들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정부는 보이지스 인디저너스 투어리즘(Voyages Indigenous Tourism Australia)과 손을 잡았다.

울루루 여행의 거점으로 통하는 율라라(Yulara)에는 호텔과 리조트,레스토랑, 은행, 우체국 등이 모여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원주민과 공생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토착민의 고유 문화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원주민의 후손이니까요.” 울루루 관광 산업을 총괄하는 보이 지(Voyage) 그룹의 홍보 담당자가 리조트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말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원주민은 인근 마을로 거처를 옮기고 울루루 관광 산업에 종사한다. 보이지 그룹은 울루루의 5개 숙박 시설을 운영하며 원주민을 대동한 울루루 투어와 각종 원시 문화 체험을 여행객에게 제공한다. 자체 관광 트레이닝 아카데미를 만들어 원주민을 트레이너로 고용하고 국립공원 가이드, 리조트 요리사, 전통 악기 연주가 등의 일자리를 지원하기도 한다. 원주민이 조상의 문화를 지키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그룹의 주요 역할이다. 세일즈 인 더 데저트(Sails in the Desert) 앞 잔디 광장에는 편한 복장의 여행객이 삼삼오오 모여 간이 무대에 올라설 주인공을 기다린다. 이내 온 몸에 빗살무늬 그림을 그린 원주민이 나타나 캥거루처럼 폴짝폴짝 뛰다가 창을 던져 사냥하는 시늉을 하고, 뒷짐을 지고 빙글빙글 돌면서 자축 세러머니를 펼친다. 부족끼리 충돌하는 대목에서는 실수를 연발하는 몸짓으로 구경꾼의 웃음을 자아낸다. 기다렸다는 듯 맨 앞자리를 차지한 어린아이 와 챙 넓은 모자를 눌러 쓴 반바지 차림의 중년 남자를 포함해 세계 각국의 여행자가 우루루 무대 위로 올라간다. 원주민의 낯선 몸짓은 어느 새 만국 공통의 언어처럼 모두가 함께 따라하며 하나가 된다. “내일 이 시간에는 토착 식용 식물로 만드는 원주민 요리를 시연할 예정입니다.” 리조트 직원의 안내를 뒤로 하고 뿔뿔이 흩어진 여행객이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숙소 입구에 다시 모인다. 울루루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일몰을 구경하려면 조금 서둘러야 한다.

만물이 침묵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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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루루가 자리한 노던 테리토리(Northern Territory)주 중앙은 호주 사막의 중심부다. 여름이면 기온이 섭씨 40도를 육박하고 비가 짧게 내리기 때문에 키 작은 나무와 얕은 풀이 초원을 메운다. 이 땅을 처음 발견한 개척자는 일찍이 식민지 건설을 계획했지만, 인간이 거주하기에 는 너무 건조하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아난구족이 대대 손손 극한의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과학적으 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메마른 땅에 서식하는 동 식물을 비롯해 만물을 자라게 하는 모든 자연현상을 숭 배했다.그리고인류를둘러싼모든것을종교적·문화적 으로 해석해 추쿠르파(Tjukurpa)라는 그들만의 생존 규 율을 만들고 황무지에서 살아가는 생활양식을 스스로 터득해나갔다.

울루루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고 싶은 여행객의 욕심은 끝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온갖 이동 수단을 동원해 바위 품으로 간다. 오늘도 사막의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사륜구동 자동차와 좌석이 껑충 올라와 있는 특수 버스는 흙먼지를 내뿜으며 여행객을 실어 나른다. 울루루는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 어떠한 장애물도 없이 고고한 자태로 오롯이 서 있다. 덕분에 어딜 가든 시야에 울루루가 따라붙는다. 언뜻 보면 코끼리가 푹 눌러앉은 형상, 시선을 거두고 다시 올려보면 노릇하게 구운 빵 덩어리를 초목 위에 올려놓은 모습이다. 마치 인간의 상상력을 실험하려는 듯 카멜레온처럼 변화를 거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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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 추타는 울루루에서 약 3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암석군락. 돔 모양의 바위 36개가 산처럼 뻗어 있다. 울루루와 같은 시기에 대지 위로 우뚝 솟아 오른 기암이지만, 거대한 단일 바위의 압도적 카리스마에 가려 그 진가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울루루를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카타 추타 트레일(Valley of the Winds Walk)이 이곳의 숨은 하이라이트라는 사실을 안다. 거대한 바위를 가로질러 바람의 계곡이라 불리는 협곡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는 ‘외계 세상’이라 표현 할 정도로 희귀한 원시 자연을 품고 있다.

기념 엽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울루루의 낙조다. 사람들은 마치 타임랩스 기능이라도 켜둔 것처럼 어둠 에 묻혀가는 바위를 미동도 없이 지켜본다. 울루루를 등 진 채 디제리두(didgeridoo, 애버리지니의 목관악기)를 연주하는 원주민 앞에 서서 샴페인을 홀짝이며 몸을 흔드는 이도 있다. 어둠에 묻힌 울루루의 잔상이 점점 흐릿해지면 본격적인 침묵의 소리(Sounds of Silence) 만찬이 시작된다. 울루루를 곁에 두고 사막 한복판에 차려진 테이블에 앉으니 부시터커 요리가 코스에 맞춰 등장한다.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접시에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선명한 은하수가 반짝인다.

“자연 풍경에서 침묵은 발견하기 힘들다.” 소설가 폴 서루(Paul Theroux)는 풍경과 여행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의 말처럼 이곳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불고, 만물이 조용히 숨을 쉰다.셀 수 없는 밤하늘의 별처럼 바위는 영겁의 세월을 고독하게 견뎠으리라. 지금 이 순간 인간의 호들갑스러운 감탄은 자연 풍경 앞에서 침묵은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게 아닐까? 자동차로 수 천 킬로미터를 달려 호주 울루루를 찾은 여행 작가 빌 브라이슨(Bill Bryson)은 애석하게도 울루루에는 단 2시간 밖에 머물지 못했다. 그는 성능 좋은 금속 탐지기를 가지고 반드시 이곳에 다시 올 것이라고 다짐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아직 울루루에 가보지 못한이들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지구상 어디에도 이처럼 극적이고 고독한 장관 속에 남거나 보기 좋게 매끄러운 대칭을 이루는 바윗덩어리는 없다. 수백 억년이나 된 바위다. 그곳에 가보라, 인간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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