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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ursuit of Happiness
​행복의 호수를 달리다

원초적인 감각을 깨우는 숲. 가장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호수.

핀란드 레이크랜드에서 만끽하는 여름의 한 조각은

일상의 행복을 되새기는 순간의 연속이다.

Published by Lonely Planet Korea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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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까다로운 속도 규정과 무시무시한 벌금 제도는 낯선 땅에서 운전대를 잡은 여행자를 긴장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헬싱키 공항을 벗어나니 기다렸다는 듯 속도 제한 표지판의 숫자가 수시로 뒤바뀐다. 시속 120킬로미터로 신나게 달리던 차들은 2차선 도로로 접어들자, 서서히 속도를 늦추기 시작한다. 그제야 보이는 차창 밖 풍경화는 레이크랜드에 입성한 이방인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장대처럼 우뚝 솟은 자작나무와 소나무가 장막을 치고 초록 풀잎이 땅을 가득 메운 울창한 숲. 거기에 마침 맞게 들어가 있는 동화 같은 목조 주택 1채. 태초의 풍경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가듯 자동차는 호수가 반짝이는 한적한 도로 위를 천천히 미끄러져 간다.

Helsinki - Lahti 
섬세하고 따뜻한 호수의 품에서 

헬싱키에서 북동쪽으로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라티는 레이크랜드의 첫 관문 도시다. 핀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페이옌네호수(Lake Päijänne)가 관통하는 이 작은 마을은 헬싱키 근교의 여름 도피처로 꼽힌다. 거대한 호숫가 기슭에 구석구석 들어찬 아담한 별장마다 겨우내 쌓인 먼지를 털고 주인을 맞을 준비로 분주하다. 핀란드에 자리한 호수는 공식적으로 18만8,000개. 이 나라를 지칭하는 ‘천 개의 호수’라는 표현에 한참을 더해야 하는 수치다. 더구나 레이크랜드 지역은 핀란드에서 가장 큰 2개의 호수가 둘러싸고 있어 물로 뒤덮였다는 이야기도 과장은 아닌 듯하다. 페이옌네 호수의 규모만 보더라도 1,000제곱킬로미터가 훌쩍 넘으니, 레이크랜드의 모든 지역은 각각 호수의 일면을 품고 있는 셈. 베 시예르비(Vesijärvi) 호수와 벡쉬(Vääksy) 운하를 거쳐 페이옌네 호수로 연결되는 도시 라티도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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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 무역의 중심지, 핀란드 대표 산업 도시로 부흥을 누린 라티의 명성을 오늘날 해안가의 거대한 목조 건물 시벨리우스 홀(Sivelius Hall)이 방증한다. 1869년에 지은 제재소 건물을 개조한 콘서트홀은 핀란드의 정체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건물 디자인의 원천은 핀란드의 산림입니다. 9만 제곱미터의 부지에 세운 목조 건물은 호숫가에 뿌리를 둔 산업의 역사를 기반에 두고 있죠.” 시벨리우스 홀 홍보 담당자가 자부심 깃든 목소리로 설명한 다. 건물 로비의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가없는 호수가 넘실댄다. 낡은 증기선이 도열한 호수의 항구 주변은 주말마다 현지인이 가득 들어찬다고. 찬란한 여름빛을 쬐면서 하염없이 호수 곁에 머무는 동안 콘서트홀에서는 어쿠스틱 선율이 울려 퍼지리라.

라티의 정수인 페이옌네 호수 가까이 다가가려면 베시예르비 항구에서 자동차를 몰고 약 40분간 오프로드를 넘나들어야 한다. 먼지를 풀풀 내뱉으며 달리는 자동차 옆으로 헬싱키부터 자전거를 몰고 온 라이더가 열심히 페달을 굴리고 있다. 파다스요키(Padasjoki) 항구에서 페이옌네 호수 수로까지 건너갈 수 있는 13킬로미터의 에보(Evo) 하이킹 코스와 도로에 근접한 산등성이 트레일 풀킬란하류(Pulkkilanharju)는 페이옌네 국립공원 (Päijänne National Park)의 비경으로 들어가는 비밀 통로다. 물론 국립공원에 공식적으로 입장하려면 물에 뛰어들거나 보트로 갈아타는 수 밖에는 없지만. 마지막 빙하기를 거쳐 서서히 생성 된 페이옌네 호수는 물 위에 암호를 새겨 놓은 듯 수십 개의 종단형 섬을 남겼다. 보트에 오른다고 하더라도 약 60개의 무인도, 암석과 가파른 절벽, 모래 사구가 흩어진 페이옌네 호수 전체를 한눈에 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희귀새가 둥지를 튼 외딴섬, 한적한 사구에 보트를 정박하고 물에 뛰어드는 가족 여행객, 구름이 데칼코마니처럼 비추는 영롱한 물결 등. 인간의 시야로 담아낼 수있는 건 지극히 일부다. “핀란드 사람에게 호수는 여름을 가장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고급 휴양지입니다.” 라티 관광사 무소 담당자 티나(Tina)가 잠시 정박한 보트 곁에 서서 호수에 발을 담 근다.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그녀의 등 뒤로 먹구름이 서서히 가시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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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hti-Jyväskyla
풍경 속 주인이 된다는 것

호수에 흠뻑 취한 지난 밤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이위베스퀼레에서 맞닥 뜨린 도시 풍경은 좀 낯설다. 자로 잰 듯쌓아올린 새하얀 타일, 기하학적으로 뻗어 있는 파사드, 자연과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창. 도시 전체가 마치 알바 알토(Alvar Aalto)의 박물관이라도 되는 듯 엇비슷한 건물이 둘러싼 거리는 예술가의 진품과 가품을 구분해야 하는 시험장 같다. “이위베스퀼레가 추구하는 도시 정비의 핵심이죠. 알바 알토처럼 건물을 지으려고 경쟁할 정도라니까요.”

알바 알토 워킹 투어에 앞장선 지역 가이드 헤타(Heta)가말한다. 전 세계에서 알토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이위베스퀼레에는 28개에 달하는 그의 작품이 도시 전역에 퍼져 있다. 그가 만들어놓은 인상적인 포토폴리오는 오늘날 극장, 시청, 대학교, 박물관 등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그리고 현지인은 일상 속에서 알토의 건축 세계를 탐닉한다.“어릴 땐 알바알토의 건축이 왜 세계적 명성을 얻게된 건지 늘 궁금했어요. 무채색에 심심하고 따분한 콘크리트 건물일 뿐인데 말이죠.” 헤타가 이야기한다. 다행히 그 해답은 이위베스퀼레에 오래 머물며 서서히 깨달았다고.

이위베스퀼레 대학교(Jyväskylä university)에 들어서자 헤타가 잠시 숨을 고른다. “지금은 알바 알토의 건물 앞을 지날 때마다 자유로운 곡선과 파사드의 정교한 디테일에 감탄하곤 해요. 실내에 들어 서면 마치 창밖의 나무가 건물 안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그의 건축 정신이 머릿 속을 지배하는 것 같아요.” 그녀가 말한다.

알토의 대표 작품으로 손꼽는 이위베스퀼레 대학교는 오랜 복원 공사를 거쳐 작년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건물 내부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열 맞춘 붉은 벽돌과 새하얀 콘크리트가 군더더기 없이 정교하게 조화를 이룬다. 커다란 창을 통해 들어온 숲과 나무는 딱딱한 공간을 부드럽게 씻어내리는 듯하다. “알토의 건축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지금처럼 사람과 자연이 들어차 있을 때예요.”

Savonlinna-PunkaharJu
​가장 순수한 곳으로 돌아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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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개의 섬과 해안선으로 이루어진 핀란드의 독특한 지형은 신 의실수로물을왈칵쏟아놓은것같다.호수,연못,강,섬,연안을 잇는 핀란드의 전체 수로는 약 31만4,600킬로미터. 육지보다는 물이 더 많은 레이크랜드의 도로 위에서 운전자는 호수와 강의 수호를 받으며 달린다. 레이크랜드를 뒤덮은 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4,400제곱킬로미터 규모의 사이마 호수(Lake Saimaa) 다. 핀란드에서 가장 큰 호수로 남북을 가로지르는 길이는 500 킬로미터, 호수 외곽 둘레만 1만5,000킬로미터에 달하니 사이마 호수 주위로 미로처럼 뻗어 있는 도시와 섬을 일일이 찾아가는 것도 평범한 여정은 아니다.

하파베시(Haapavesi)호와 필라야베시(Pihlajavesi)호 사이 에 자리한 사본린나는 사이마의 대표 도시. 레이크랜드의 전형 적인 주거지다. 물 한가운데에 지은 15세기 요새 올라빈린나성 (Olavinlinna Castle)을 주축으로 형성된 호반 마을은 여전히 동화 같은 풍경을 뽐낸다. 아담한 호숫가에 파스텔색 목조 주택이 한결 같이 제자리를 지키고, 개체 수가 얼마 남지 않은 얼룩큰점박이 바다표범이 물속 깊숙한 곳에 숨어 유영한다. 태초로 돌아간 듯 호수로 뛰어드는 아이와 커다란 바위에 드러누워 볕을 쬐는 청년 무리, 항해를 떠나는 보트의 움직임이 천천히 재생되는 동안, 잠시 카페에 앉아 바쁘게 달려온 여정을 되새긴다. “우리에게는 일 상의 휴식이 필요했어요. 지금은 시간이 날 때마다 호숫가를 산책 하고 보트를 타러 나가죠.” 영국에서의 바쁜 삶을 뒤로하고, 부모님의 고향인 사본린나로 돌아온 요한나(Johanna)가 말한다. 그녀는 현재 사본린나 구시가의 1800년대 건물을 개조한 카페와 호텔을 함께 운영 하고 있다.“다음 주면 이 조용한 마을이 헬싱키보다 북적일 겁니다. 성 주변의 호텔은 이미 예약이 꽉 찼죠.” 그녀가 덧붙인다. 매년 7월 전 세계 음악 애호가가 1년 내내 손꼽아 기다리는 오페라 축제가 막을 올리면, 1달 내내 올라빈린나성에서는 아리아가 울려 퍼지고 호수는 더욱 극적인 면모를 드러낼 것이다.

우주 한구석의 길들지 않은 풍경은 스스로 개척하며 여행 하는 이가 얻는 보상이라고 했던가? 사본린나 근교 풍카하류 (Punkaharju)로 방향을 돌리자, 때묻지 않는 숲이 기다리고 있다. 장엄한 소나무들로 뒤덮인 숲의 능선을 따라 느린 속도로 헤쳐가 는 도보 여행자가 자동차 백미러 안에 들어왔다 금세 사라진다. 풍카하류의 자연경관은 사실 자동차와 자전거, 기차, 보트 혹은 두발,어떤수단을이용해도좋을만큼빼어나다.울창한숲사이 로 핀란드에서 가장 깨끗한 푸루베시 호수(Lake Puruvesi)가 넘실 대고 능선을 따라 교차하는 산책길마다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이 펼쳐진다. 물과 육지 어디에 있어도 기막힌 풍경을 보상 받기엔 충분해 보인다.

Porvoo-Pelinki
행복은 인생의 어떤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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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본요키 강어귀에서 시작하는 포르보의 바다는 남쪽 군도까지 흘러간다. 포르보에서 약 30킬로미터 정도 차를 몰고 가면 초기 스웨덴 정착민의 영향을 받은 여름 휴가지를 엿볼 수 있다. 핀란드가 낳은 세계적 동화 작가 토베 얀손(Tove Jansson)의 가족이 몇 세대에 걸쳐 여름을 보낸 곳이다.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육지와 섬을 잇는 노란색 페리에 자동차를 싣고 강을 건넌다. 뜻밖의 자연과 따뜻한 삶을 기대하며.

300명 정도가 모여 사는 펠링키섬은 거주민 중 95퍼센트가 스웨덴어를 사용한다. 외지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던 이 섬이 최근 인기를 끌게된 건 숲 탈출 게임 아일랜드 리들스(Island Riddles) 때문.  핀란드의 국민 캐릭터 무민을 탄생시킨 토베 얀손에게 영감을 준 장소를 찾아가는 게임으로, 남편을 따라 펠링키섬으로 이주해 온 에리카(Erika)가 직접 만들었다. “핀란드의 자연과 고요한 숲 속을 걷는 자유를 느끼길 바랍니다. 마지막에토베 얀손에게 가장 중요했던 바다도 꼭 보고 오세요.” 무민 동화책을한 손에 들고 모험을 떠나는 사람들을 향해 에리카가 응원을 보낸다. 그녀가 짜놓은 코스대로 완주하기 위해선 수시로 동화책을 펼쳐 힌트를 찾아야 한다. 상점에서 우유통을 뒤지고 동굴로 들어가 암호를 풀고 퍼즐을 맞추며. 마침내 저멀리 바다가 보이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진다. “축하해요. 당신은 이제 리들러가 됐어요.” 결승점에 직접 만든 팬케이크를 차려놓고 잠시 사라졌던 에리카가 뒤늦게 나타나 인사를 건넨다.

“가끔 숲에서 무스를 만나곤 하지만, 섬에 산다고 무섭거나 고립된 기분이 든 적은 거의 없어요. 오히려 자유롭죠. 언제든 숲을 뛰어다니고 보트를 띄워 바다에 나갈 수 있으니까요.” 에리카가 말한다. 그녀의 가족과 섬 이웃이 모두 모인 저녁 식사 자리,  훈제 순록 고기를 함께 나눠 먹는 동안 고요한 온기가 몸을 감싼다. 시끌벅적한 수다로 자정을 넘기자, 에리카가 진한 나무 향이 밴 숲 속 오두막으로 안내한다. 침대 위에 살포시 놓인 두툼한 양모 양말 위에는 “핀란드의 여름 별장은 춥습니다” 라는 메모가 얹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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