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hing OR Everything
48Hours in Chiang Mai
치앙마이 48시간 여행
옛 왕국의 역사를 품고 새로운 문명과 조우하는 타이 북부 도시 치앙마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에서
현지인의 삶에 다가서는 48시간을 보내다.
Published by Lonely Planet Magazine 2016
Wat Ram Poeng & Baan Kang Wat
왓람쁭 & 반깡왓
이른 아침, 치앙마이 도심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왓람쁭 사원으로 향한다. 사원 안은 우뚝 솟은 황금빛 건물에 기가 죽은 듯 조용하고 고요하다.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떼며 사색하고 있는 수행자, 허리를 꼿꼿이 펴고 눈을 감은 채 명상 중인 사람이 곳곳에 눈에 띈다. 우선 이곳에 들어서고 나면 걸음 속도를 줄여야 한다. 걷는 것부터 수행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왓람쁭은 40년 전, 수도승 수빤(Phra Ajahn Supan)이 이곳에 오면서 본격적으로 명상 교육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승려의 가르침에 따라 각자에게 알맞은 수행을 교육 받고 명상 시간을 서서히 늘려 가며 서기, 앉기 등 단계별로 나아간다. 사실 초보자에겐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5분 동안 머릿속을 비우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몸의 움직임을 천천히 느끼며 숨쉬는 데에 집중하다 보면, 마치 걷는 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모든 것이 어색하다. “타이인에게 명상은 기본입니다. 마음과 정신을 다스리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능숙하게 명상 자세를 잡아주던 현지 가이드 빠닌다(Paninda)가 말한다. 왓람쁭은 현지인과 여행객 모두 참여할 수 있는 10~12일의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관광지 대신 이곳에 머물며 명상만 배우고 가는 서양인도 꽤 많은 편이다.“집에서집중할 수 없을 때는 사원에 찾아와 명상을 하고 돌아가요.” 빠닌다의 말처럼 생활 불교가 자리 잡은 타이에서 사원은 현지인에게 정신 수양소나 다름없다.
사원을 나와 한적한 골목을 지나면 예술 공동체 마을 반깡왓이 보인다. 13가구가 모여 사는 이곳에 현지 예술가의 갤러리, 공방, 수공예품 가게, 게스트하우스, 카페가 있다. 나무 2~3그루만 덩그러니 있던 공터에 집을 짓고 아티스트 커뮤니티를 만든 이는 치앙마이 출신의 세라믹 아티스트 나타웃 루꼬라싯(Nattawut Ruckorasit). 그는 치앙마이의 ‘올드 하우스’를 재현하기 위해 오래된 나무와 창문 자재를 모으고 집을 짓기까지 무려 5년의 공을 들였다. “건축에서 생활 양식까지 로컬 타이 커뮤니티를 보여 주고 싶었어요.” 레스토랑과 카페를 제외하고, 이곳에 머무는 대부분의 사람은 현지 아티스트다. 그는 1년 주기로 그들에게 공간을 빌려주고 한집에 사는 가족처럼 정겹게 지낸다. 날씨가 서늘해지는 12월에는 이곳 사람들과 로컬 핸드크래프트 전시를 열고, 야외 공연장처럼 꾸며놓은 정원에서는 영화제가 펼쳐질 예정이다. 우선 반깡왓 마을에 들어서면, 옹기종기 붙어 있는 가게를 하나씩 점검하듯 둘러보는 것이 좋다. 쇼핑을 시작하자마자 아마도 지갑이쉴 새 없이 열릴 것인데, 평범한 관 광지에서는 볼 수 없는 훌륭한 수공예품을 건질 수 있다. 쇼핑을 하다가 허기진 배는 부부가 운영하는 ‘카놈찐 앳 홈’에서 해결할 것. 타이 가정식 뷔페로, 집에서 직접 만든 소박한 음식을 정갈하게 펼쳐놓는다. 디저트까지 제공하는 뷔페 가격은 단돈 69바트(한화 약 2,200원). 간이식당 처럼 소박한 분위기에서 엄마가 해주는 정겨운 집밥 맛을 느낄 것이다.
Cooking Class in the Old City
올드타운에서 쿠킹 클래스
시내 중심의 성문 타패(Tha Phae)는 치앙마이의 역사 유적이자 여행자의 길잡이다. 성곽을 기준으로 주변은 구시가와 신시가로 나뉘는데, 성곽 안 구시가는 옛 모습 그대로 돌길과 해자가 둘러싸고 있다. 유서 깊은 옛길을 걷다 보면, 신성한 사원이 속세에 불쑥 들어온 것인지, 사원들 사이에 번잡한 거리가 형성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곳곳에 사원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이다.
구시가의 중심이자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쁘라뚜타 패(Pratu Thaphae). 여행객을 위한 편의 시설과 게스트 하우스, 레스토랑이 모인 일대는 언제나 관광객으로 북적거린다. 소규모 쿠킹 클래스를 여는 곳도 대부분 이곳에 위치한다.현지인의 집에서 요리를 배우 듯, 옛 가옥 사이로 은밀히 따라 들어가면 타이 요리에 열광하는 각국의 여행객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갈 길 바쁜 여행객을 위해 반나절 코스로 나눠 진행하는데, 반나절이라 해도 핵심 요리 다섯 가지를 배워갈 수 있다. “유럽,미국 등 서양에서 온 여행객에게 특히 반응이 좋아요. 최근 이 골목에만 20개가 넘는 쿠킹 클래스가 생겼어요.” 아시아 시닉 타이 쿠킹 스쿨(Asia Scenic Thai Cooking School)에서 2년째 일 하고 있는 가스(Gas)는 현지 생활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여행자에겐 요리를 배우는 것만큼 좋은 경험은 없다고 덧붙인다. 4시간 코스는 뒤뜰에서 직접 키우는 허브와 향료를 직접 보고 만지며 설명을 들은 후, 재래시장에 가서 식자재를 구경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각종 소스와 타이 전통 식자재를 둘러보고 돌아오면 본격적인 요리 시작. 커리와 스프, 팟타이 같은 볶음면 요리 중에서 각자 원하는 메뉴를 택한다. 한 가지 요리를 완성하면 바로 맛보는 시간을 갖는 데, 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모양과 맛이 천차만별이다. 초보자도 실패 없이 모든 요리를 해낼 수 있도록 가스는 연신 학생들의 솜씨를 살핀다. “더 맵게 하고 싶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커리 페이스트를 듬뿍 넣어 똠양꿍을 만들던 독일 출신의 레나(Lena)가 말한다. 그녀는 치앙마이를 여행하며 먹은 요리 중 가장 맛있었던 것을 골라 배운다고.
Sunday Walking Street
일요일의 재래시장
일요일 오후 5시, 쁘라투 타패 맞은편 랏차담네른(Rad- chadamnern) 거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양쪽으로 빈틈없이 노점이 이어지고, 길을 걸을수록 사람이 불어난다. 다양한 수공예품에서 먹거리 노점까지. 상인 반, 관광객 반으로 채운 거리가 축제처럼 들썩이기 시작한다. 매주 일요일마다 열리는 장터는 타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재래시장이자 관광 명소. 사실 타이의 명물 야시장은 치앙마이 곳곳에서 펼쳐지지만, 일요 시장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기념품만 늘어놓지 않는다. 수공예 솜씨가 좋은 현지인이 자신의 물건을 선보이는데, 종류도 다양하고 품질도 꽤 우수하다. “치앙마이 사람은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것에 자부심이 있어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물건을 만드는재주를 타고난 사람이 많지요.”시장에 함께 동행한 빠닌다가 자랑스럽게 말을 건네지만, 사실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힘들 정도로 시장은 인산인해다. 라피아(야자수잎에서 뽑은 섬유)에 무늬를 넣어 만든 수제화는 300바트(한화 약 1만 원). 구경하는 손님에게 가격을 부르고는 신발을 만드는 데 다시 열중하는 상인의 손길이 꽤 섬세하다. 야자수 잎을 엮어 모자를 만드는 상인 앞에는 사람들이 삥 둘러서서 그의 손만 지켜본다. 마치 거리 퍼포먼스처럼 저마다 자신의 재주를 뽐내는 풍경이 ‘길거리 공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금 전까지 시끌벅적 하던 거리가 순식간에 정적이 흐르더니, 앉아 있던 상인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저녁 6시 정각, 시장 안에 국가가 울려 퍼지고 타이인은 국왕에 대한 예를 표한다. 정신없이 움직이던 관광객도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이내 시장은 제 모습으로 돌아온다.
Baan Jang Nak
코끼리 목각 공방, 반장낙
“타이에서 코끼리는 특별한 존재예요. 친근하면서도 신 성한 동물이지요. 타이 사람이라면 치앙마이에 다녀온 사람에게 선물 받은 코끼리 장식품이 집에 하나쯤 있을 걸요?” 반장낙으로 향하는 길, 가이드가 말한다. 반장낙 은 목각 코끼리를 만드는 공방으로, 시내에서 차로 30분 거리인 산깜팽(San Kamphaeng)의 작은 마을에 있다. 차에서내리자마자건물2층높이까지우뚝솟아있는코 끼리 조각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손으로 일일이 나무를 깎아 이 어마어마한 코끼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기 지 않지만, 이곳의 수장 펫 위리야(Phet Wiriya)라면 문 제없어보인다.전문교육을받은적없는그는열일곱살 때 우연히 코끼리를 만들어보고는 독학으로 지금의 장인 이됐다.30년전,오래된쌀집을개조해만든반장낙은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인생 박물관’ 같다. 2층에 올라 가면28년전에책을보고만든아프리카코끼리와열일 곱살에만든첫작품을전시하고있다.“백지수표를주고 제가 만든 첫 코끼리 목각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농담인 줄 알고 팔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꼿꼿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그가 평생 쏟은 열정은 코끼리의 세세한 움직임까지 정교하게 조각한수백개의 목각으로 남아 있다.손바닥만한작은코끼리목각은최소1주일, 건물의 전시 작품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코끼리의 경 우장장4개월에걸쳐손수만든다.1층에서는그의솜씨 를 이어가려는 교육생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연신 나무 를깎고있다.이곳에서가장어린학생의나이는50세. 공을들이는시간에비해돈이되지않다는이유로젊은 사람이 모두 떠나고 남은 만학도들이다. “본래 천천히 정 교하게 만들어야 하는 일을 잘해요. 성격이 느긋해 무언 가집중해서오랫동안잡고있는게체질에맞죠.”타이 북부 지역에서 유독 목공예품이 유명한 이유를 묻자 그 의딸이대신대답을이어간다.그녀는현재아버지와함 께 반장낙을 운영하며 전시와 투어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작업장을 오픈하고 전시 공간을 늘려 치앙마이 목 공예의 우수성을 여행객에게도 널리 홍보할 예정이다.
Thanon Nimmanhaemin 타논 님만해민
님만해민 거리가 있는 구시가 서쪽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거리마다 아기자기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을 잇고, 예술 작품이 길거리를 장식한다. 성벽에서 벗어나 마치 다른 세계를 만난 것처럼, 모든 것에 호기심이 발동할 만하다.이곳에는 나이든 장인 대신 독특한 작품을 만드는 젊은 예술가가 자리하고, 한층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흐르며, 트렌디한 물건을 판다. 옛 주택을 개조한 갤러리 시스케이프(Gallery Seescape)에 들어서자 입구가 뻥 뚫린 전시관 2개가 나란히 붙어있다. 한쪽에선 타이 악기를 형상화한 그림 전시가 한창이고, 바로 옆에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판매한다. 전시관과 마주 보는 카페는 타이의 유명 아티스트이자 이곳의 관장인 토를라르프 라르프자로엔숙(Torlarp Larpjaroensook)이 직접 디자인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재미있고 독특한 작품을 주로 선보입니다. 치앙마이 출신을 비롯해 아시아 전역의 예술가가 참여하지요.” 큐레이터로 일하는 클레어(Clair)가 공간을 안내하며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인다. 그들이 선보이는 전시만큼, 아담한 갤러리는 꽤 세련되고 현대적이다. 공간을 꼼꼼히 둘러보면 치앙마이의 최신 예술 트렌드를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벽에 붙은 타일, 창틀에 올려둔 소품 모두가 예사롭지 않다. 님만해민을 걷다 보면, 시스케이프를 비롯해 이색 공간을 수시로 발견하게 된다. 카페에 좌식 도서관을 만든 라이브러리스타(Librarista)는 최근 치앙마이 대학생 사이에서 인기있는 곳이다. 미니바를 갖춘 테라스석을 지나 안쪽 깊숙이 들어가면 도서관이 등장하는데, 칸막이가 있는 1인석과 전망 좋은 좌식 테이블은 책을 보거나 공부하는 사람들로 이미 만석이다. 도심 속 작은 휴식처인 싱크 파크(Think Park)도 님만해민 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 야외정원이 넓게 펼쳐진 입구로 들어가면, 카페와 작은 디자인숍이 모여 있다. 저녁이면 야외에 장식한 인공 조명이 환하게 비치며 쉼터는 오붓한 술자리가 되기도 한다. 야외에 마련한 간이바에서는 맥주나 타이 럼주 상솜(SangSom)을 팔고, 운이 좋으면 야외 라이브 공연도 감상할 수 있다.